유대교의 새로운 관점

유대인의 포경수술에 대한 다른 관점

종교적 할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

종교적 할례 행함을 재조명하고자 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할례는 고통스러우며, 예전부터 가정되어 왔던 의학적 이득이 없다는 사실 및 할례를 받은 아이의 어머니에게도 어떠한 영향을 끼

친다는 이유 때문이다.

-고통과 상처-

유대인 아이들은 태어난지 8일째에 마취 없이 할례를 받는다. 이 의식과 동반된 고통은 주관적으로 아이의 비명으로 판단하건 혹은 객관적으로 아기의 심장박동이나 혈장내 cortisol의 농도 차이

로 보나 매우 크다. 소아과의사인 Paul Flelss는 포경수술시 발생하는 고통에 의한 심장박동수 및 혈장내 cortisol 농도의 증가 정도는 가히 고문에서 의해 발생되는 변화와 비슷한 수준이다고 지적

하였다 (Paul Flelss, 1995).  Stang 등에 의하면 포경수술이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신생아에서 고통과 스트레스 연구의 좋은 모델이라고 이야기한다 (Stang 등, 1988). 이것은 유대인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신념과 완전히 다른 발견이다. 유대인들은 ‘할례는 피부를 약간 자르는 행위로 아픔을 주지 않는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할례를 기저귀를 가는 일 혹은 손톱

을 깍는 것에 비유한다. 할례도중 아이가 비명을 지르고, 떨며 창백해져도 이 할례의식을 지켜 본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용케 비명도 안지르고 울지도 않았어, 장해, 사실 새곤새곤 잠들었었어’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큰 아픔이나 스트레스에 의하여 가면상태에 빠져드는 반 혼수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7-9). 의사이며 모우얼인인 할례자에 의해 유대

인들 사이에 영속되고 있는 다른 신념은 포피에는 신경이 없기 때문에 할례 시행시 아픔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피는 복잡하며 매우 중요한 감각기관이다. 포피는 손가락 끝이나 입술에서 발견되는 것과 흡사한 분화된 마이스너스 소체 (Meissner’s corpuscles: 촉각신경 종말기)를 포함하는 수많은 신경말단을 포함하고 있다 (10). 많은 유대인들은 모스렘의 할례에 비하여 유대의 할례는 덜 통증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신생아기의 할례가 청소년기의 할례에 비하여 통증이 덜하다는 주장일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최근까지 지배되어온 바, 신생아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라는 근거 없는 사회적 통념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는 신생아가 어린아이, 청소년 및 성인에 비하여 같은 자극에 대하여 더 강하게 느끼며, 더 오래 느낀다. 또한 신생아는 이러한 정보를 느낄 수 있는 기관이 몸 전체에 걸쳐 더욱 넓게 분포하고 있다. 런던대학의 Fitzgerald 박사팀은 신생아 몸의 신경계는 어린아이와 성인의 신경계와 해부·생리학적으로 매우 다르다라고 보고하였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성인에서는 매우 경미한 자극 혹은 인식 못하는 자극이 신생아에서는 아픔을 유발하기에 충분할 수 있다. 게다가 신생아는 성숙한 신경계에서의 억제기전을 가지지 못하므로 할례와 같은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 (11). 신생아 시기에는 4%의 아이들만이 포피가 음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즉 신생아 포경수술시 갓난아이들 중 96%에서는 음경 및 관상구(corona sulcus)에 붙어 있는 포피가 강제적으로 찢겨진다는 사실이다. 세 살이 되면 90%의 어린아이들의 포피는 음경으로 분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살 때 포경수술을 시행하면 10%의 아이들은 더 많은 상처를 갖게된다 (12).

또 하나의 모순은, ‘좋다.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상처에 의해 아픔을 느꼈다면 매우 짧은 시간 동안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무엇인가를 기억하기에 너무 어리다’. 사실상 할례 후 음경표면에 출혈이 있으며 아마도 수일간 고통이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이 할례에 대하여 몇 가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충분한 자료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의식적인 기억이 아닌 신경계의 재구성에 의하여 영원히 남게된다. 이러한 좋은 예는 Taddio 박사팀 (13)의 흥미로운 실험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예방주사를 놓을 때 통증반응에 관한 연구에서 포경수술을 받았던 어린이들이 그렇지 않았던 어린이들에 비하여 현저히 높은 반응을 보였다. 또한 신생아시기에 통증을 경험한 아이들이 엄마-아기간 결속 (14) 및 잠자는 양식이 방해받는 것 (15)을 보고 한 연구자도 있다.

포경수술은 이처럼 고통을 유발한다. 이 고통이 가해질 때 아기는 울지만 그 어떤 것도 그를 고통에서 모면할 수 있게 하거나 고통을 줄여줄 수 없음을 알게된다. 즉 완전히 속수무책인 자기를 경험하게 된다 (16). 그의 울음과 발버둥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무력을 경험하게 된다.

-합병증-

할례에 의해 출혈, 감염, 요도협착, 음경절단, 흠이 생긴 음경, 폐뇨, 드물지만 신장장애, 요도감염, 폐혈증, 4예의 급성 심부전 등의  방심할 수 없는 합병증들이 보고되고 있다 (17-25). William과 Kapila (26)는 음경에 영구적으로 극심한 손상을 주는 소름 끼치는 예들을 보고하였다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유대인이나 모슬렘 공동체에서 할례자에 의해 시행된 할례의 합병증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발표된 통계는 1건도 없는 실정이다.

-가능한 의학적 이득의 결여-

유대교의 할례는 철저히 신앙에 근거하여 행하여지고 있다. 실질적인 혹은 납득할 만한 의학적인 이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종교적 혹은 비정통파 유대인들은 위생상 혹은 질병의 예방 차원에게 이 의식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포경수술이 자궁암, 음경암, 요도감염 등의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철저히 불신되어 온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이러한 웃지 못할 의학상식에 앞서서 팽배하던 포경수술이 천식, 간질 및 자위행위를 조절 못하는 경우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믿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에 대한 영향-

새로이 어머니가 된 여자들은 그녀의 아기를 품고 싶어하고 귀여워하고 싶으며 보호하고 싶어하는 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유대사회에서는 이 자연스러우며 생명과 같은 어머 로서의 갈망은 할례의식의 필요성과 대치하게 된다. 모든 유대인 여성들은 자식을 낳은 후 휴식을 취하면서 기뻐하여야 할 시기에 자식에 대한 본능과 전통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느낌은 비단 유대인 여성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할례를 행하는 아프리카 종족이나 모슬렘 사회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괴로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보통 할례가 거침없이 시행되기 때문에 아기의 엄마들은 몇 십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무기력함, 죄책감 및 후회를 하게된다고 한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이 성장한 후 “아프지 않았어, 별거 아니였어”라고 말한다면 그제서야 어느 정도 이러한 의식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출혈과 상처의 심각성을 알게된다면 절대로 이 의식에 찬성할 수 없으며 심지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유대법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의 할례 행함을 지휘하게 되어 있고 여자는 절대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 할례는 남자들의 결속을 보이는 의식으로 엄마로부터 남자아이를 빼앗아 그 종족의 한 남자로 선언하는 의식이다. 할례를 신성한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여성도 아이도 아닌 유대인 남성들이다. Pollack (28)은 모든 유대여성들은 칼을 가져다 남자아이의 포피를 베어내는 것이 신성한 것과 상관이 없다고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신성한 것인가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신생아의 안녕을 산산히 부수는 그 어떤 행위도 신성한 것 일수 없으며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Pollack (29)은 ‘할례는 부권사회의 기본이지 신성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윤리적 연루-

태어난 지 팔 일된 아이에게 행하도록 허락된 것을 어른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분명 폭행으로 책임을 묻게 될 사건이 된다. 만약에 어린아이와 갓난아이를 완전한 인간으로 간주한다면 그들을 강압적으로 붙잡고 몸의 건강하고 기능적인 한 부분을 싹둑 자르는 행위는 명백한 비윤리적 행위이다. 할례를 당하는 아이들은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며, 너무 어려서 할례에 동의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앙앙 울기만 하는 것이 할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유일한 최상의 표현이다.

유대교 내로부터의 변화에 관한 문헌적 지지

유대교와 이스람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고 믿고 있으며, 하나님은 곧 완벽으로 개념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에 대항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유대교에는 ‘Shmirat Ha Guf’란 우리 몸의 보호에 관한 법이 있다. 이 법에서는 몸을 꿰뚫는 행위, 문신 및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금기사항은 탈무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법에 의하면 생후 팔일된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은 위법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할례에 관한 계명은 신명기와 이사야서에서 은유적인 방법으로 다시 나타난다. 선지자 이사야는 ‘네 마음의 양피를 베어라’ 라고 하였다. 이는 마음속 깊은 곳을 무장함으로 죄악에 관한 무감각증의 두꺼운 껍데기를 녹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오늘날에 잘 적용될 수 있다. 우리 마음의 양피를 벨 때 우리 아이들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이다.  유대교의 권위있는 법전인 Shulchan Aruch는 갓난아기가 아플 경우 할례를 금하고 있다. 이는 생명자체가 의식에 대한 복종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생명을 구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위험이란 임박한 것과 가능성이 있는 위험을 모두 포함한다 (31). 성경은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레위기 19장 16절) 라고 말하고 있다. 생후 팔일째 행하는 할례는 때때로 위험을 동반하므로 금하여야 한다. 또한 탈무드에서는 의식에 순종하는 것 보다 생명과 건강이 우선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대 현인으로 간주되는 랍비 Maimonides는 할례에 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할례의 목적 중 하나는 성행위를 억제하는 데 있다. 음경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포피를 베어내었다. 할례가 성적 기쁨의 강도를 약화시키며 때때로 정상적인 기쁨도 감소시킨다. 음경에 있는 피를 잃거나 귀두를 덮는 껍데기를 제거할 경우 음경은 약해진다’ (32). Maimonides는 의사이며 랍비로 그의 말은 현재의 포피의 질병 예방 기능 및 성적기능 약화를 예시한 것이다. 비록 그의 글은 할례를 고수하기 위하여 쓰였지만, 현재에는 여러 각도에서 그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

유대인과 할례에 관하여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많은 유대인들은 할례의 통증, 상처, 위험 등을 이야기 할 때 기본적으로는 ‘물론 당신이 맞죠. 동의 안하는 건 아닙니다. 또 불합리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전통을 따라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다른이들은 매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들은 확고한 의학적 증거와 진정한 인간적 관심을 반유대주의자의 공격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유대인의 박해자들은 항상 할례를 뿌리채 뽑고자 노력하였었다. 할례를 금하는 그들의 동기는 유대인 말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염려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이 때문에 할례에 대하여 가장 강한 엄벌인 사형을 집행하였다.

기원전 168년 시리아의 Epiphanes Anthiochus 4세는 할례 받은 아이와 그 부모를 사형시켰다. 기원후 135년 로마황제 Hadrian은 유대교 가르치기, 안식일 지키기, 할례 행하기를 법으로 금지하여 이를 위반한 자는 역시 목숨을 잃었다. 유대인들은 이 법령을 무시하였기에 수천명이 고문을 당하였고 끝내 신앙의 징표 버리기를 거부하여 목숨을 잃었다. 유대인들의 이 할례를 위한 순교는 중세 스페인, 구소련 및 나찌 정권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러므로 할례는 유대인에게 단지 믿음의 상징일 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압박에 대항하였던 충성, 용기, 투쟁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행하는 할례가 옳다고 믿기에 심지어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할례를 행하며 그들의 단일성과 믿음을 주장하고 있다. 모든 유대인들은 이 역사를 유대인 모두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므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할례를 반박하고자 하면 그들은 다시 옛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심지어 잘 완곡어법으로 표현된 비평일찌라도 그들에게는 마치 강력한 위협으로 들리게 된다.

 종교적 할례와 유대 단일성

유대인들이 할례에 대하여 반박을 받을 때 항상 방어의 도구로 사용하는 하는 말이 하나님의 명령 (창세기 17장 11절-14절)이기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파악해 보면 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드리는 매우 적은 수의 유대인을 제외하고는 꼭 그렇지는 않다. 정통유대교회를 다니는 전통적 유대 여인중 단지 32%만이 좋은 유대인으로 사는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이 빈도는 남자를 포함한 유대전체인구를 고려한다면 더욱 낮아진다 (33). 왜냐하면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훨씬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성경의 613개 율법 대부분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 초정통파 유대인들도 자기 집의 종이나 손님에게도 할례를 행하라는 할례율법 (창세기 17장 12절)을 지킬려고 꿈도 꾸지 않고 있다. 유대인으로 개혁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신론자 및 유대공동체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살펴볼 때 이러한 불일치는 더욱 더 현저하다. 개혁주의자와 자유주의자는 자유로이 율법을 선택하여 전통을 현대화하고 비유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좀더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재 번역하고자 한다. 자주 무신론자 및 유대공동체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전통 따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위의 네 부류 유대인들도 그들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다. 이는 이들이 아직도 정신적으로 엄격한 전통주의자들에게 묶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그들을 묶여놓았는가는 신의 명령이 아니라 단지 따돌림의 두려움이다. 사슬을 끊는 존재로서의 공포이다. 역사적 중압감과 가족을 통하여 생각하게 되는 문화적 압박이 할례를 반대하는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할례는 유대 단일성의 풀 수 없는 실뭉치로 보인다. 이러한 단일성에 대한 도전은 유대인들이 이미 경험한 유대인 생존권 그 자체에 대한 도전과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유대인 단일성에 대하여 몇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어떤 유대인이 단일성을 가지는가? 유대 여성들은 할례와 같은 표시나 흉터 없이 4천년 넘게 그들의 단일성을 유지하여 왔다. 그런데 할례가 유대 단일성에 절대 필요한 조건이라면 우리는 유대인중 52%의 여성은 단일성이 없다고 이야기하여야 한다.

둘째, 유대인들은 할례가 그들에게 유일한 단일성의 표시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포경수술은 모슬렘 국가, 일부 아프리카 국가, 호주, 한국 및 미국에서도 보편화된 의식(?)이다.

셋째, 어떤 랍비는 아직도 할례가 그들을 양떼 (믿음) 안에 머물게 한다고 생각하나 실제로 많은 유대 젊은이들이 유대교를 떠나고 있다.

넷째, 유대법 (Halacha)에 따르면 유대인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은 할례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된다.

문화적 변화는가능한가?

모든 문화는 진화한다. 한 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다음세대에서는 과다하거나 필요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좋은 예로 옛날의 중국여성들은 전족행함(?)을 받았다. 서양인들은 이 행위를 발을 꽁꽁 묶어 절름거리게 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하여튼 여권운동가들에 의해 이 행위가 사라지는 1920년대 까지는 이 행위를 중국인으로서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로 생각하였다. 중부 우간다의 사빈족은 최근 오랫동안 입장을 굳혀온 전통적인 여성의 할례의식을 버렸다. 영국에 거주하는 유대공동체의 젊은 부모들은 비록 적은 수이긴 하나 그들의 아들에게 할례 행함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남자아이나 여자아이 모두 비폭력적 의식을 통하여 유대공동체와 더 넓은 세상으로 환영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 부모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그들의 아이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배척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러한 염려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상 할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와 그들의 부모도 공동체에 굳건히 남아 있다.

지금까지 할례는 유대정신의 중요한 상징을 가지고 있었다. 주임 랍비인 Sacks박사는 영국 BBC사와의 회견 (1992년 9월 19일 BBC 라디오 방송)에서 ‘할례의 목적은 성행위를 신성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라고 하였다. 기자의 ‘어떻게’라는 질문에 그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이다’ 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아기에게는 할례는 상징이 아닌 무서운 현실이다. 앞에서 우리는 유대교 안에서도 할례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상당한 기세로 존재함을 보았다.

이러한 유대인들은 과연 한국의 포경수술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