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포피복원수술

반포경수술: 포피 복원?

포피복원술: 고대의 포피복원술

포피복원술은 고대로부터 시행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포피복원술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포경수술을 받지 않으며 귀두부가 노출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특히 중요하였다. 포피복원술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중 많은 수는 신구약 성서에서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는 체력 단련장과 목용탕에서 옷을 모두 벗고 운동을 하거나 목욕을 하였는데 귀두부를 덮는 포피가 없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으며 추하게 여겨졌다. 포피가 없는 성기는 수술에 의한 것이든지 선천적으로 없든지 간에 보기 흉하고 기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공개적으로 포피를 퇴축시키는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다. 실제로 포피가 퇴축되어 귀두부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원형의 안전핀같이 생긴 기구를 포피의 가장자리에 가로질러 부착시키는 음부봉쇄술이 흔하게 시행되었다.

고대의 포피복원술은 건강상의 목적이 아니라 외형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더욱이 로마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포피복원술을 시행하였다. 마카비서(書), 탈무드 및 고린도서에 보면 포피복원술을 시행한 문헌들이 나와있다. 이집트인들도 한때 관례적으로 포경수술을 시행하였으나 로마시대부터 이러한 통상적인 포경수술은 성직자들 사이에서만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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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주데움 폰디움: 로마 제국시대에 무게로 음경피부를 당겨 포피복원을 하는데 이용된 깔데기 모양의 구리로 만든 기구>

‘주데움 폰둠’ (Judeum Pondum)

로마제국 시대에 행해졌던 포피복원술 방법 중 간단한 방법은 ‘주데움 폰둠’이라고 불리우는 기구를 사용하는 것인데 깔대기 모양으로 생긴 구리로 만든 튜브를 음경체 주위에 부착시키는 것이다 (그림 1).

무거운 구리튜브가 성기의 피부를 앞쪽으로 잡아 당겨 늘리는 효과를 유도하여 당겨진 피부가 제자리에 위치하여 귀두부를 덮고 새로운 포피를 형성토록 한다. 이러한 방법이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첼수스’ (Celsus)씨 방법

포피복원술의 수술적 기법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한 최초의 문헌들 중 하나는 ‘첼수스’가 쓴 것이다. 첼수스는 서기 14-37년에 쓴 그의 저서 ‘드 메디치나’에서 두 가지 수술방법에 대해 기술하였다. 그는 자신의 수술방법중 하나는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시행하는 ‘포피복원술'(decircumcision)이라고 하였으며,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선천적으로 포피가 없는 사람에게 시행하는 ‘포피재건술'(reconstruction)라고 하였다. 외형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이상적인 수술의 대상자는 귀두부가 작으면서 성기 피부가 느슨한 소년이나 청년이었고 이전에 포경수술로 포피가 제거된 경우보다는 선천적으로 포피가 없거나 발달이 미약한 경우가 선호되었다.

  포피복원술

‘첼수스’는 포경수술을 받은 경우에 귀두관 아랫쪽에서 음경의 혈관이 보이지 않는 부위를 따라 육양근막까지 얕은 환상의 피부절개를 가한 후 음경의 피부를 완전히 벗기고 벗겨진 피부를 잡아당겨 귀두부를 덮도록 하였으며, 이 상태에서 음경피부가 뒤로 이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음경체를 붕대로 단단하게 감았고 새로운 포피와 귀두부가 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화연납을 함유한 반창고를 귀구부와 새로 만들어진 포피 사이에 위치시켰다 (그림 2A, 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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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첼수스씨 포피복원술: (a). 귀두관하에서 환상의 피부절개술을 가하고 음경피부를 벗겨 뒤로 제치고 귀두부를 덮는다. 음경체의 피부는 제자리를 지키도록 바깥쪽에서 묶는다. (b). 음경체 피부가 동여매진 상태를 보여주는 횡단면과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포피와 귀두부 사이에 위치한 석고판 (화살표)>

수술 후 음경피부가 퇴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기가 억제되도록 유도하였다. 그래서 수술후 며칠간은 고형의 음식물 섭취를 금지시켰는데 이는 환자가 배고프고 기운이 쇠약해지면 발기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얼마나 포피가 미관상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었는지 의문시 된다.

포피재건술

선천적으로 포피가 없거나 발육이 온전치 못한 경우에 첼수스는 음경기저부에서 아래층에 있는 혈관과 요도보다 더 얕게 환상의 피부절개를 가하고 (그림 3 (a)) 음경의 피부가 귀두부를 덮을 때까지 음경피부를 귀두부쪽으로 당긴 다음 원위치로 돌아가지 않게 귀두부 끝에서 당겨진 포피를 결찰하였다. 이때 결찰은 배뇨가 가능하도록 느슨하게 묶었다. 피부가 부분적으로 벗겨진 음경체는 아마(亞麻)천으로 감고 새살이 나오도록 기다린다. 이 방법으로 새로운 포피의 외관상 또는 기능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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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첼수수씨 포피 재건술: (a) 음경 지지부의 환상절개로 음경피부가 벗겨진 상태에서 피부가 귀두부 끝으로 이동하여 귀두부를 덮고 있으며 퇴축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끝단이 동여매져 있고 음경체의 근위부는 피부가 벗겨져 있다. (b) 피부가 벗겨진 음경과 귀두부로 이동하여 새로이 생긴 포피와 이를 동여맨 것을 보여주는 횡단면>

‘첼수스’의 포피재건술을 수정한 방법이 수세기가 지난 후에 나왔다. 첫번째 변형방법으로 ‘펜’은 ‘첼수스’의 포피재건술과 같은 방법으로 음경의 피부를 벗겼다. 그리고는 음경체의 피부가 벗겨진 부분에 피부이식편을 위치시켰다 (그림 4A). 그는 이 같은 방법으로 외형상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음경의 피부이식에 대한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음경의 피부이식은 이식후 음경이 발기된 상태를 고려하여 피부이식편을 잡아늘린 후 음경의 제자리에 봉합해야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식된 피부이식편이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모서리에 봉합사를 길게 남겨둔 후 이식편 위로 ‘젤폼’과 같은 비유착성 가제로 덮고 그 위로  미네랄 오일을 함유한 솜을 갓덧베개 모양으로 만들어 덮은 다음, 양단의 긴 봉합사로 묶어준다 (그림 4B). 음경을 더욱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음경을 수직으로 세운후 드레싱 주위로 플라스틱 통을 세워 고정시킨다 (그림 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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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첼수스씨 포피재건술의 변형법: (a) 음경체에 이식한 피부절편 (b) 덧베게 모양의 솜을 양단의 긴 봉합사로 묶은 상태 (c) 음경과 이식한 피부절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기 위하여 드레싱 주위로 위치한 플라스틱통>

‘첼수스’씨 포피재건술의 다른 변형법으로 ‘굿윈’은 ‘첼수스’씨 포피재건술과 마찬가지로 음경의 피부를 벗기기 위해 음경기저부에 환상의 절개를 넣고 전체 귀두부를 덮을 때까지 피부를 귀두부 쪽으로 이동시킨다. ‘굿윈’은 추가로 새로 만든 포피의 최말단부에 여러개의 작은 횡절개를 넣은 후 종축으로 봉합하여 새로운 포피의 말단부를 좁게 하였다. 포피가 귀두부를 지속적으로 덮고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 만든 포피의 모서리를 견인 봉합하였다. 피부가 벗겨진 음경체의 부분은 새살이 차오도록 그냥 남겨두지 않고 음낭 내에 얕은 터널을 만들어 음경을 묻어둔다. 2-3개월 후에 음낭피부를 튜브 모양으로 만들어 음경피부의 결손부위 주위로 감아 덮어준다. 그러나 음낭피부에는 털이 있으므로 음경에 이식된 음낭피부의 털은 음경을 외관상 흉하게 한다.

‘첼수스’의 포피재건술을 변형시킨 ‘굿윈’의 이단계 수술법을 일단계 수술법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린치’와 ‘프라이어’는 음낭 피부판 아래의 주된 영양 동맥을 절단하지 않고 살린 상태에서 음낭 피부판(pedicled island)을 이용하여 벗겨진 음경체 부분을 덮는 방법을 고안했다. 마찬가지로 음낭의 체모 때문에 이러한 음낭 피부판을 이용할 경우 음경에 털이 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음낭의 털을 뽑아낸 다음 수주간 기다려 본 다음 털이 다시 나는지를 확인한 후 포피재건술을 시도할 수 있다

나치시대의 포피복원술

포피복원술이 2차 세계대전중 다시 부활하였다. 포경수술이 유태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유럽인들에서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유태인을 색출할 수 있었다. 나치가 폴란드를점령하였을 때 포피복원술이 많이 시행되었던 바르샤와 의사들의 보고서가 있지만 그 당시 시행했던 수술의 결과 및 성공 여부 뿐만 아니라 수술 방법들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일반적으로 좋지 않았으며 절망상태의 사람들이 단지 이용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훗날 영화제 수상작의 소재가 되었던 ‘솔로몬 페렐’의 전쟁회고록에서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 고아인 ‘페렐’은 독일인으로서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경험을 기술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히틀러 청년 군사학교에서 아리아인의 모범으로 추앙받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포경수술을 시행받았기 때문에 유태인이라는 것이 발각될까봐 항시 두려움에 떨었다. 그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옷을 발가벗지 않았다. 그는 귀두부 주위의 피부를 봉합하여 포피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의 포피복원술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페렐과 같이 많은 유태인들이 포피복원술을 시도하였지만 대다수 아니 일부에서라도 성공적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

포피복원술의 다른 방법들

‘주데움 폰둠’을 이용한 방법과는 다르게 음경의 피부를 귀두부 쪽으로 오랜기간 견인시키는 방법들에 대한 보고가 있다. ‘굿윈’은 음경의 잉여 피부를 얻기 위해 조직확장기의 사용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조직확장기는 원형모양으로 단단한 내층과 조직확장에 필요한 외층의 구조를 갖고 있고 조직확장기를 작동시키는 동안 음경이 압박받지 않도록 내측에는 단단한 링이 필요하다. 링의 직경은 환자의 음경 둘레에 따라 조절되며, 원형의 조직확장기는 음경 주위와 음경귀두관하의 절개를 통해 음경피부 아래에 쉽게 장착된다. 수주가 지나면 음경피부는 충분히 여유가 있을 정도로 늘어져 귀두부를 덮기에 충분할 만큼의 피부를 얻을 수 있고 비교적 정상 모양의 포피처럼 보인다.

포피재건술의 다른 방법으로 음경의 근막이나 피부근막으로 만들어진 절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두가지 피부절편 모두 음경 말단부에서 얻어지고 이들은 북(Buck)씨 근막으로부터 풍부한 혈류를 공급받는다. 근막 피부판을 이용한 새로운 포피의 형성은 그림 5에 제시되어 있다. 포경수술을 받은 부위를 따라 환상으로 육양근과 북씨 근막까지 깊이 절개를 가한다. 이때 신경혈관다발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음경기저부까지 육양근막과 북씨 근막을 박리하고 박리된 북씨 근막이 음경귀두부를 덮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면 부씨 근막을 음경 말단부에서 내측으로 접어 이중층이 되도록 하며 이중층의 북씨 근막이 음경귀두부를 덮을 정도로 넓으면 그 자리에서 봉합한다. 이어 대퇴부 내측에서 피부이식편을 얻어 접혀진 북씨 근막의 내외측에 위치하게 하고 흡수성 봉합사를 이용하여 그 위치에서 봉합한다. 봉합이 끝나면 비유착성의 제로폼 가제와 미네랄 오일로 적신 솜으로 새로 만든 포피의 내외측에 위치시키고 모서리에 이전에 길게 봉합해두었던 봉합사를 이용하여 드레싱을 지주결찰하여 고정시킨다 (그림 5). 피부이식편은 5일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킨 후 드레싱을 제거한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샤워하고 피부이식편을 공기에 노출하여 건조시키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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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원형의 북씨 근막편과 피부이식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포피 (a) 북씨 근막의 박리 (b) 박리된 북씨 근막을 귀두부 위치에서 이중층이 되게 안쪽으로 접은 상태와 그 표면을 피부편으로 이식한 상태 (c) 피부이식편을 봉합한 상태. 가장자리의 긴 봉합사는 이식편 위에 덮을 덧베개 모양의 솜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남겨둔 것>

‘멕에닌취’는 그림 6-A에서와 같이 귀두부의 길이에 맞추어 충분히 넓게 원형의 음경 피부근막절편을 만들었다. 피부절편을 원형의 형태 그대로 내측으로 접혀 흡수성 봉합사를 이용하여 음경의 귀두관하에 봉합하여 고정시킨다. 이어 대퇴부 내측에서 피부이식편을 얻어 피부가 결손된 부위에 이식시킨다. 그리고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드레싱한다. 이상에서 기술한 두 가지 방법은 기능적인 면과 외형적인 면 (털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에서 성공적으로 새로운 포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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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원형의 피부근막판과 피부 이식편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포피. (a) 북씨근으로부터 영양을 받는 음경피부판. (b) 피부가 없는 음경체에 덮는 자유 피부 이식편 (c) 포피의 내측 피부편과 외측 이식 피부편을 보여주는 횡단면>

포피복원술은 성형수술로서 많은 정신적인 문제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들의 대부분은 포경수술에 대해 일생동안 편견을 가지며 많은 수가 동성애를 하고 성에 대해 얌전한 체한다. 포피복원술을 시행하기 전에 이러한 환자들에 대해서는 술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외형상의 결과, 그리고 이 같은 수술이 통상적으로는 시행되지 않는 사실에 대해 주의깊은 설명이 매우 중요하다. 더 나아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상태이거나 비현실적인 기대, 특히 대인관계나 정신에 변화를 기대하는 환자의 경우에는 정신과적인 상담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포피복원술의 방법들은 표준화 되어있지 않으며 문헌상의 보고들도 추적관찰이 되지 않은 주로 일화적인 것들이다.